약봉지가 서랍 안에 수북하다. 행여 난, 이 많은 알맹이들이 다른 이의 눈에 띨까 걱정이다. 그래서 그런지 매일같이 병원을 찾는 아내의 손이 서랍을 열고 동그래진 눈에 한소리 나올까 싶어 노심초사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속히 쾌유했으면 하는 아내의 바람을, 어쩌면 게으름과 무던함으로 실망시키는 것만 같아 미안하고 싫어서이다. 하지만.... 쌓여있는 약 속에는 나만의 진실이 숨어 있다. 언제부터인지 식사를 마치고, 때가 되면 쓸쓸히 혼자 앉아 입안에 털어 넣는 느낌이 싫다.
같은 시간대에 병실의 다른 환자분들이 나처럼 또 홀로 쓸쓸히 앉아 알약을 입에 넣는 모습도 내 모습이상 보기가 싫다. 아픈 이의 상태에 따라 면밀하고 정성껏 포장되었겠지만 간호사님의 손을 떠나 그냥 그렇게 서랍 속에 팽개쳐져 있다가 바닥에 떨어진 과자부스러기 하나 주워먹듯 그냥 무의미하게 입안으로 넣기가 썩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내 서랍 안에는 자기능력을 맘껏 발휘 못한 약들이 많이도 쌓여 있다. 제때에 약을 먹어주어야 하는 습관은 입원한 환자가 하루의 심신을 관리하면서 주어지는 세 번의 좋은 찬스이며 기회일 것이다. 하지만 난, 참으로 좋아하는 약 먹는 시기가 따로 있다. 똑같은 크기와 모양에 똑같은 효과를 지닌 약일지라도 그것에는 분명 플러스 알파의 효과를 내기에 충분한 때가 나에겐 있다고 생각한다. 아내가 병원을 찾아오는 시각은 매일같이 조금씩 다르다. 그 변화 많은 시간 중, 아내는 내가 식사를 하는 어느 한 끼만큼은 거르지 않고 꼭 함께 해준다. 그렇게 곁에서 지켜봐 주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그 한끼는 꿀처럼 잘도 넘어간다. 약도 마찬가지다. 식사 후 아내가 떠다 준 시원한 물로 입에 털어 넣는 약의 맛은 밥처럼 맛있다. 어쩌다 약봉지까지 손수 뜯어서 내 손에 쥐어주며 다 먹기까지 하나에서 열까지 지켜봐 주는 경우엔 훨씬 더 맛있다. 누군가 곁에서 지켜봐 주는 모습을 난 참 좋아한다. 그 대상이 아내라면 더 좋고 가족이어도 좋고 어쩌다 문병 온 사람이 있을 때 그 시기가 약 먹을 시간이면 좋다. 때로 주위 환자분들이 쓸쓸히 약을 먹지 않고 그 가족이나 문병 온 분들이 챙겨주고 지켜보는 데에서 입에 넣는 약의 모습 또한 난 좋아한다. 그들의 바람이 약에 곁들여져 그 이상의 기능을 발휘할 것 같아서 그래서 좋다.
가끔 난 아내나 가족의 전화에 밥 먹었어? 약도 잘 챙겨먹고?하는 적잖히 귀찮아 할 목소리에도 미소가 흐른다. 약 먹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는 이제 막 백일을 갓 넘은 딸아이의 눈망울에 약은 이미 약의 의미를 초월했다. 내가 바라는 약의 의미는 여기에 담겨 있다. 시간이 흐르고 다시 한 번 서랍을 열어본다. 나와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한 약봉지는 여전히 그대로다. 병원을 나서는 날 난 저것들을 잘 챙겨가고 싶다. 남겨진 저들에게도 얼마든지 기회(?)를 주고 싶기 때문이다. 사랑이 있고 소망이 가득 담긴 가족의 눈이 있는 집으로 나는 속히 가고 싶다.
짧은 병상이 되도록 수고하시는 이웃에 계신 분들의 고마움과 바람이 있고 스스로의 의지가 있기에, 오늘은 비록 목발에 의지하지만 내일은 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보며 괜시리 남겨진 약들에게 미소가 던져진다.
제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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